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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4월 26일 화요일

1997년 편지





안녕하세요, 군인아저씨?

움마 1992년 1호지

옮긴이  박상욱(11학번)

안녕하세요?

이제까지의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군인 아저씨란, 얼굴이나 이름은 몰라도 아주 씩씩한 모습이었는데 함께 지내던 사람에게 이런 호칭을 붙이려니 좀 어색한데요. 물론 잘 지내겠지요, 신동씨?

그리고 보니 오빠 입대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 데 좀 편지가 늦은 감이 있어 미안하네요. 오빠의 이해를 구하는 게 힘들진 않을 거라 믿어요..

이미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접했으리라 생각해요. 학내문제, 과내의 작은 이야기들도. 달리 내 이야기외엔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네요. 그렇다고 내 이야기가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학생회라는 곳에 관여하고 있는 탓에 조금은 바쁘게 살아요. 학교안의 일들이 곧 나의 일일 수 있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지켜보아야 하고, 회의도 해야 하고, 자보도 써야 하고, 신선한 후배들도 챙겨 주어야 하고, 열심히 놀아야 하고, 그러다 틈나면 공부도 해야하고 말이에요.

드디어 나의 생활에 ‘후배’란 것이 등장했다는 것. 내가 그 입장이기만 했을 땐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을 수 있어 마냥 좋기만 했는데 좀 부끄럽단 생각이 들어요. 선배라는 위치를 통해 지금의 후배들이 아닌 지난날의 내 모습을 비추어 보는 까닭이 아닐까 싶어요. 나와 오빠의 공통적인 현재가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이 자꾸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네요. 작년 오리엔테이션 첫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오빠의 모습도 기억할 수 있고 엉성한 세미나지만 그래도 열중하고 재미있었던 우리도 있었고 장난치고 때로는 맞기도 했지만 그러나 굽힘없이 장난치던 나의 모습도 떠올리기 어렵지 않고, 입대 전날 손잡고 흐르는 눈물도 모르는척 웃으며 “잘가요” 그러다 부둥켜안고 그냥 울어버렸던 기억도, 꽤나 좋은 시간들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것 같아 흐뭇하네요.

이렇듯 웃으며 지난날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곧 다시 만날 수 있는 짧은 헤어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물론 좋은 선배로 기억에 남게 해줄 시간들일테지요?

서로 속한 사회가 달라 더 이상의 공통적 화제를 찾을 수 없음을 이유로 이만할까 하는데 괜찮겠지요? 언제나 오빠를 기억하는 후배란 것으로 짧은 편지를 마칠께요.

건강하세요. 오빤 잘 하실 거예요.

1992.4.2. 부연이 씀



TO. 부연

참 오랜만에 불러보는 너의 이름이구나.

가까이 있을 땐 무척이나 쉽게도 불렀던 많은 이름들이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가끔씩 큰 소리로 외쳐 부르고 싶은 건 그만큼 날 둘러싸고 있던 그들의 자리가 커서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홀로 제각기 떨어져 있는 외로운 군인의 유일한 기쁨이 어쩌면 그리운 이의 편지를 받는 것, 바깥세상의 소식을 듣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이 온통 짙푸른 초록 빛깔로만 물든 것들이라 작안 일에도 쉽게 기뻐하고 우울해 하며 그래서 군인을 단순하다고 말하는 지도 모르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고 지금은 어떠한 모습으로 무엇을 그리며 살고 있는지...

옛 기억들을 헤집고 제멋대로 상상해 보며 그렇게 지금껏 허기진 그리움을 어렵사리 채워가며 지냈던 이 곳 훈련소 생활도 이제 조금씩 마무리에 접어 들고 있다. 채 기억되지도 못하고 지나가버린 빠른 시간의 흐름들. 가끔씩은 그만큼의 시간을 전과는 전혀 다른 낯선 곳에서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보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한다. 스스로에게 점점 무관심해져 가고 이따금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오직 떠오르는 건 가끔씩 열병처럼 온몸을 휩싸고 돌던 그리움과 비틀거리며 자신과 싸우고 있는 나의 모슴뿐. 요즘은 모든 것이 정리되지 못한 혼란함을 느낀다.

오늘 오후엔 오랜만에 하늘이 파랗게 웃고 있다. 나에게까지 내려질 봄의 축복이 남아 있었는지 오랜만에 웃어보았다.

부연이 편지 받고 놀라고 기쁘고... 그저 기쁠 뿐!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겠지.

요즘은 힘든 훈련도 거의 끝나고 편해서 그런지 시간이 더디감을 느낀다. 그만큼 조금쯤 여유를 갖고 이것저것 생각도 해볼만 한데 그동안 무디어진 머리탓인지 아니면 원래 머리가 둔한 탓인지 모든 것이 생각만큼 쉽진 않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그렇게 살 수 있으면 하는 바렘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왜 이렇게 나 자신에 대한 푸념을 너에게 자꾸 털어놓는가. 술잔을 앞에 놓고 긴 밤을 지새우며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자꾸만 쌓여 이젠 목을 차고 오르고... 언젠간 그 시간이 올 것임을 알기에 부연이 마음 편하게 재미없는 얘기 그만하기로 하자.

떨어져 있는 시간은 길었는데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멀고...

밤이 깊어간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이틀밤에 걸쳐 쓴 편지라 읽기가 힘들구나. 글씨도 엉망이고.

훈련소 퇴소식은 5월 4일이지만 이곳 논산에서 2주, 다시 평택에서 3주 간의 훈련을 더 받을 것 같다. 부연이 웃는 모습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마도 그 이후가 되겠지.

잘 지내길 잠들기 전 언제나 기원하기로 하며 오늘 밤도 좋은 꿈 꾸자.

안녕.

1992.4.18. 황산벌 Blue New Ki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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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7년, 천지간이 탄생하다

1997년, 천지간이 탄생하다

아크바르 97년 4월호

글쓴이  백정원(97학번)
옮긴이  박상욱(11학번)


3월 17일에 있었던 1997년도 1차 정기 학생총회에 새로운 안건으로 올라온 것은 지난 94년도에 사라졌던 아랍어과 풍물패의 부활과 함께 정식 소모임으로서의 승인에 대한 것이었다. 이 안건을 제출한 사람은 이번에 아랍어과에 새로 입학한 신동훈(97) 학우이다. 이미 아랍어과 풍물패는 적지 않은 수의 학우들이 학회에 동참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고 새로운 각오를 위하여 소모임명을 지난 ‘아풍’에서 ‘천지간’으로 바꾸기까지 하였다. 앞으로 꾸준한 모임을 가져 탄탄한 기반을 쌓아 오래도록 지속되기를 기대한다. 이번 풍물패장인 신동훈(97) 학우와의 인터뷰를 통하여 ‘천지간’에 대하여 알아보았다.

- 아크바르 97년 4월호 편집부

Q. ‘아풍’을 ‘천지간’으로 바꾸게 된 동기와 그 의미는 어떤 것인지?
   A. 우선 천지간의 뜻은 하늘, 땅, 인간을 뜻합니다. 정문철(94) 학형의 제의와 여러 학형들의 동의로 ‘천지간’으로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물론 천지간은 과거 ‘아풍’의 맥을 잊는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각오로 시작하는 의미에서 명칭을 바꾸게 되었습니다.

Q. 아랍어과 풍물패를 부활시키게 된 동기는 무엇입니까?
   A. 예전부터 풍물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물론 학교 동아리도 있지만 과에 도움을 주고 싶었을 뿐만 아니라 결정적으로 선배들의 조언이 있었기에 이렇게 새로이 시작하게 되었습니다.

Q. 현재 학우들의 참여 정도는 어떠한지요?
   A. 좋은 편이지만 더 큰 참여를 기대해 봅니다. 그리고 과거 아풍 선배들의 조언이 많은 힘이 되고 있습니다.

Q. 현재 가장 힘든 점이 있다면?
   A. 악기의 부족을 비롯하여 가장 큰 문제점은 임원들 대부분의 기본 실력의 부족이 가장 힘든 점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각오하고 시작했기에 임원들 대부분의 더 큰 참여도와 노력만 있다면 조만간 해결되리라 믿습니다.

Q. 활동 상황과 앞으로의 계획은 어떻습니까?
   A. 매주 월, 수요일마다 영어과 풍물패에게서 전수를 받고 있으며 목요일마다 ‘천지간’ 모임을 통해 피나게 연습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여름 방학을 통해 전수관으로 가서 전수를 받을 예정이고요. 현재 가장 큰 희망은 조만간에 자그마한 공연을 해보는 것입니다.

Q. ‘천지간’을 통해 이루고 싶은 것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A. 지금까지 해보고 싶었던 풍물패 활동을 하며 땀을 흘려보고 싶고, 학형들끼리 돈독한 정을 나눠보고 싶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과에 도움을 줄 수 있었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Q. 아랍어과 학형들에게 부탁하고 싶은 것이 있다면 어떤 것입니까?
   A. 무엇보다도 관심이 가장 필요한 것 같습니다. 또한 전 ‘아풍’ 선배님들과 타 학우들의 지원도 필요합니다.

Q. 마지막으로 각오와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지금 당장 무언가를 이루어 보고 싶다는 욕심보다는 차근차근 배워 가며 느끼고 싶고, 그렇게 하다 보면 아랍어과에서 가장 멋진 소모임이 될 것이라는 것을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 끝으로 무조건 열심히 하겠다는 말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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응답하라 1997, 수능아랍어편






응답하라 1997

특집 : 제7차 초중고등학교 교육 개정안 개편 
제2외국어 아랍어 신설!!

아크바르 97년 4월호 

글쓴이  임창수(97학번)
옮긴이  박상욱(11학번)

이번 제7차 초, 중, 고등학교 교육과정 개편은 학생들의 자율 선택으로 학생들이 배울 수 있는 과목의 확장과 앞으로의 21세기에 있어서 세계화, 정보화 시대를 주도할 자율적이고 창의적인 한국인을 육성하겠다는 취지로 발표하게 되었다. 특히 이번 교육과정 개편 안은 고교 문·이과의 구분을 없애고 학생들의 능력, 흥미, 적성, 진로를 중시한 다양한 선택 과목 개설에 중점을 두었다고 한다. 더구나 주목할 만한 사실은 세계화에 부응하여 이전에 있었던 제2외국어 과목(프랑스어, 독일어, 에스파냐어, 중국어, 일본어, 러시아어 이상 6개 언어)에 ‘아랍어’ 과목을 신설하고 제2외국어 과목의 확대와 수업 방법의 개선에 힘쓰게 한 것이다.

이번 제7차 교육 개정안에 제2외국어로 아랍어가 추가됨에 따라, 외부의 아랍어과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가 정착되었으며 또한, 아랍어과 학생들은 재계, 금융계, 고시, 언론계뿐만 아니라, 중·고등학교 교원으로까지 나아갈 수 있는, 졸업 후 진로의 선택권이 더욱 넓어지게 되었다.

지난 3월에 있었던 제7차 교육과정 개편에서의 제2외국어 아랍어 신설은 아랍어과에 있어서 정말로 획기적이고 경사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이번 제2외국어 아랍어 신설은 다시 한 번 아랍어의 중요성을 학교에 인식시켜 주었을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국내에도 아랍어와 아랍어과에 대한 새롭고 강한 이미지를 주게 되었다.

이번에 아랍어가 제2외국어로 신설되기까지에는 많은 교수님들과 동문들의 수고가 있었다고 한다. 이분들에게 우리 아랍어과 학생들은 큰 감사의 뜻을 표하는 바이다. 그 중에서도 현재 아랍어과의 전임 교수로 계신 오명근 교수님이 큰 수고를 해주셨다는 것이 주변의 목소리이다. 4월 아크바르지의 특집으로 제7차 교육 개정안 제2외국어 아랍어 신설을 실으면서 이번 아랍어과 경사의 장본인이신 오명근 교수님의 말씀을 들어보기로 한다. 

 아크바르, 97년 4월호, 3쪽 



오명근 교수님 19년전 인터뷰

아크바르 97년 4월호

97년 4월호 아크바르지에는 아랍어의 제2외국어 과목 신설에 관한 특집 기사와 이에 큰 역할을 하셨다고 전하는 오명근 교수님 그리고 당시 학과장님이신 손주영 교수님의 인터뷰가 실려있다. 이 3기사를 복구하고 19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오명근 교수님과 EBS에서 아랍어 강의를 하고 계신 이인섭 교수님 인터뷰를 새로 기획해 올린다.
  
글쓴이  오명근 교수님 
옮긴이  박상욱(11학번)

우리나라 교육 개혁은 매 5년마다 실시됩니다. 이번 제7차 교육 개정안에도 몇 가지 새로운 사항이 개정되었는데 제2외국어 아랍어 신설이 그렇습니다. 이에 맞추어 아랍어 각론 개발을 금년 중으로 마칠 것입니다. 1998년, 1999년에 5권의 교재를 개발하고 2001년, 2002년에 5권을 더 개발할 것이고 아랍어를 고등학교뿐만이 아니라 중학교에서도 ‘생활 아랍어’라는 제목으로 가르치게 될 것입니다.

이번 제2외국어 아랍어 신설까지에는 오랜 기간의 노력이 있었습니다. 이번 일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그 동안 계속된 공청회가 있었고 작년 8월에 있었던 공청회에서 마침내 아랍어의 제2외국어 신설이 결정되었습니다. 여기까지 오기에는 한국외국어교육학회(주 : 오명근 교수님도 당시 재직중)의 노력 및 관련 부서, 교육개발원, 교육부 담당자들의 수고가 있었고, 이들의 아랍어의 중요성에 대한 재인식과 여러 가지 점(아랍어 사용 인구수, 아랍의 문화, 아랍의 역사적 가치 등등)의 고려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이번 일에 대하여 아랍어과에서는 아랍어과 교수님들이 연구진과 협의진으로 나뉘어 교재(각론) 개발의 기초 및 기본이 될 여러 가지 면을 심사숙고 중입니다. 주 연구진으로는 본인을 비롯하여, 최진영 선생님과 명지대학교 조희선 교수님이 수고하고 계십니다. 내년부터 아랍어 교직과목을 개설할 것이며, 문교부에서 이미 시범적으로 올 6월쯤 3-4개의 학교를 설정하였기에 교생실습도 계획 중입니다.

이번 제2외국어 아랍어 신설로 인하여 아랍어과는 교사직 등의 취업 선택의 폭이 더욱 넓어졌고, 기업체와 중·고등학교 등에 새롭고 공한 이미지를 주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하여 앞으로 아랍어과는 중동과의 학문적이고 양·질적인 교류가 전보다 더 활발해질 것입니다. 또한, 아랍어도 일반계 고등학교와 외국어 고등학교의 수업이 다르므로, 앞으로 중·고교 아랍어 교사의 교직과목 이수에 대한 상세한 사항이 교육부에서 지침 되면, 아랍어 전공과목에 아랍어 교육 등의 교과과정이 추가 될 것입니다.

이번 일은 다시 아랍어의 중요성을 학교뿐만이 아니라 국내에도 홍보하는 계기가 되었고, 아랍어의 학문적 가치와 중요성, 유엔 공용어라는 것을 재인식함과 동시에, 국민들이 고등 아랍어 교육을 통해서 아랍의 언어·문화·종교·역사 등을 올바른 판단과 방법으로 인식하게 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아랍이라는 곳이 사막이나, 기름으로 얼룩진 사회가 아닌 수천 년의 역사를 지닌 민족의 사회로 인식되게 말입니다. 그리고 현재 7개의 제2외국어가 있는데, 아랍어와 아랍어과도 7번째의 제2외국어로써 다른 언어의 새로운 경쟁 상대가 되었습니다.

아랍어과 학생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21세기와 더불어 아랍어는 정식으로 한국의 제2외국어가 될 것이며, 나가가서 대학수학능력시험의 과목으로 될 것으로 간주되고, 국립대학의 아랍어과 개설 가능성과 각 학계 및 언론계에서 아랍권에 대한 인식이 제고될 수 있으므로 그 사회적 파급효과가 매우 크다는 것입니다. 아랍어과 학생들은 아랍어에 대하여 희망적인 미래를 갖고 아랍어 공부에 더욱 열심히 정진해 주기를 바랍니다.

 아크바르, 97년 4월호, 4쪽



오명근 교수님 2015년 인터뷰

2015년 12월 앗타므르

글쓴이  오현석(14학번)

Q. 처음 아랍어를 교육과정에 만들어야 한다고 생각하게된 계기가 있나요?

   A. 1973년에 아랍어가 UN공용어가 되고, 소위 말하는 글로벌리제이션 즉, 세계화가 되면서 한국에도 아랍어 교육이 필요하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당시 한국외국어교육학회 창단 맴버였는데, 그때 아랍어를 교육과정에 넣는 과정에 도움을 주신 분이 지금은 정년퇴임 하신, 한국교원대학교 영어과의 배두본 교수님입니다. 그래서 같이 협동작업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에는 한국외국어교육학회, 한국 교육개발원, 교육과정 개발연구위원회 등 많은 단체들에서 도와주셨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제7차 외국어계 교육과정 개발’을 시작하게 되었고 후에 연구 개발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이후 강론, 개론, 교과서 개발 등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리고 2000년에 1종도서 편집위원회가 열렸습니다.

Q. 처음 아랍어 교육과정을 만드실 때, 반대하는 사람도 많았을 거 같은데..

   A. 처음에는 많은 단체들이 적극적으로 도와주었습니다. 그러나 주변 사람들이 간혹 “아랍어를 제2외국어로 인정해 줄까?”, “그거 무모한 것 같다” 와 같은 말들을 했습니다. 그러나 끝내 성공 하였지요.

Q. 아랍어 교육과정을 만들 때 특히 고려하셨던 점이 있나요?

   A. 무엇을 어떻게 교과서 내용에 넣을지 등을 다른 제2외국어 교과서를 모두 참고해서 만들었습니다. 내용, 삽화, 난이도와 같은 모든 것들을 하나하나 정하는데 힘들었습니다. 교과서를 만드는 데는 집필진, 연구진, 심의진으로 나누어 만듭니다. 혹시나 문법적으로 오류는 없는지, 생소한 아랍문화로 인한 삽화에 오류는 없는지, 꼼꼼히 만들었습니다. 아랍어 모음기호 찍는 것도 매우 많이 신경 썼는데요, 모든 문장에 모음기호를 찍느라 힘들었습니다. 

Q. 아랍어엔 종교적인 내용들이 있는데 혹시 이로 인해 힘들었던 점은 없었나요?

   A. 그래서 교육부 당국하고 ‘알라’에 대한 개념을 어떻게 표기할 것인가에 논의가 있었습니다. 한국적 종교사항을 고려해 ‘하나님’ 이란 말을 쓰지 못하고 그냥 ‘알라’로만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도 논란이 많았습니다. 

Q. 가장 기억나는 일화는요?

   A. 당시 컴퓨터에 아랍어가 입력되는 것이 애플의 ‘맥켄토시’ 밖에 없었습니다. 저희는 당시 학교에 멕켄토시 컴퓨터가 없어서 교육부에 따로 지원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나 당시 다른 언어들은 컴퓨터가 필요하지 않았었는데 아랍어 부분만 필요하다고 해서 교육부가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다행히 교육부의 지원을 받아 교과서 집필 기간 동안 컴퓨터를 빌려 작업할 수 있었습니다. 


이인섭 교수님 인터뷰

통번역대학원 교수님
EBS 수능아랍어

글쓴이  지상진(15학번)

Q. 우선 수능 아랍어가 생기게 된 역사가 궁금합니다.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고 하셨는데요
   A. 2002년이었던가, 2003년이었던가... 대략 그때부터 수능과목으로 채택되기 위한 회의가 시작 되었지. 아마 100번 넘게 회의가 있었을 거야. 우리 학교 교수님 중에서는 오명근 교수님이 회의에 다녀오셨어. EBS에서 강의가 시작된 것은 2004년 이었고, 2005년부터 아랍어 수능이 들어갔지. 사회분위기상 아랍어가 중요한건 아는데 어떻게 교육할 것인지는 아무도 물꼬를 트지 못했었지. 여하튼 현재처럼 아랍어가 수능과목으로 채택된 건 오명근 교수님의 공이 크지. 

Q. 그렇다면 아랍어가 생긴 04년부터 계속 아랍어 강의를 해오신 것인가요? 바쁘실 텐데 계속 하시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A. 맞아, 2004년부터 강의를 시작했으니 이제 ebs에선 12년째지. 나 말고도 다른 두 세분이 강의를 해보신 적이 있으신데 아무래도 학생들이 아니라 카메라를 앞에 두고 강의를 진행하는 것이라 어색하신지 NG가 많이 나더라고. 그래서 내가 계속하게 된 거지. 나는 EBS강의를 하는 게 재미있어. 가능하면 앞으로도 계속 할 계획이야. 

Q. EBS 답변도 교수님이 달아주시는 것인가요?
   A. 아니, 내가 한국학 중앙연구원의 Infokorea의 편집장, 외교부 산하 국제 교류재단의 코리아나 잡지 아랍어 편집장, 학교의 의료통역프로그램 진행 등 하고 있는 일이 많다보니 주로 답변은 EBS가 지정해주신 “답변선생님”이 달아주셔. 이 분은 주로 문제 해설 같은 질문에 주로 답변을 달아주시지.

 그러나 “지금부터 아랍어를 공부하면 몇등급이 나올까요?”, “수능 3개월 남겨놓고 아랍어를 시작해도 될까요?”와 같은 다소 공부방법이나 인생 상담에 가까운 것은 내가 직접 달아줘. 아, 그리고 “이인섭 교수님 어디 계세요?”와 같은 질문에도 “나 여기 있다.”와 같은 답변을 달아주지.

Q. 아랍어 과외에 관심을 가지는 친구들이 많은데 어떻게 하면 고등학생 친구들을 잘 가르칠 수 있을까요?
   A. 아랍어를 가르칠 때 가장 나쁜 건 글자만 익히고 찍게 하는 교수법이야. 주로 다섯 번 강의 2등급을 보장한다고 광고하는 속성학원이나 과외에서 이렇게 가르치지. 물론 불가능한건 아니야. 2015년 수능에서는 1등급이 23점으로 잘 찍으면 1등급을 받을 수 있었지. 글자를 익히기 어려우니 글자만 가르치는 것 같아. 
하긴, 아랍어 글자도 어려운데 독학해서 단어를 익히고 문장을 읽고 문제를 푼다는 것이 쉽지는 않겠지. 좀 더 나은 과외나 학원은 글자와 단어를 익히게 하고 익힌 단어를 기본으로 찍게 해. 쉬운 10문제를 맞추고 찍으면 1등급이 나오니까. 
 하지만 잘 가르치는 사람들은 아랍어 시험의 기본 패턴을 가르친다고 할 수 있어. 아랍어의  동사변형, 동사와 전치사 패턴과 같은 시험의 유형을 가르치고 특히 단어에 집중해서 가르치지. 상위개념의 단어와 하위 개념의 단어를 한꺼번에 외우게 하는 거야. 위와 같은 방법은  단기로 가르치는 거지만, 장기로 1년 정도 꾸준히 가르친다면 더 좋겠지.

Q. 교수님 강의를 미리 들은 적이 있었는데 단어암기를 강조하신 것이 기억이 납니다. 어떻게 하면 잘 외울까요?
   A. 나는 순간 암기력이 좋은 편이라 손으로 쓰지 않고 눈으로 사진을 찍듯이 단어를 외웠어. 그런데 아랍어는 글자들이 점이 많은 데 눈으로만 익혀서는 다소 헷갈리더라고. 그래서 눈으로 익히는 것에서 더 나아가 단어를 천천히 발음하고 귀로 느껴보며 단어를 외웠지. 그러니까 몸이 기억하더라고. 이처럼 입체적인 감각을 이용하는 방식으로 단어를 익히면 잘 외울 수 있을 거야.

Q. 수능아랍어 교재 집필기준이 어떻게 되나요? 그리고 교수님도 교육과정에 참여하신적이 있으셨나요?
   A. 나도 당연히 아랍어 수능교재를 집필하는데 참여했었지. 그런데 EBS에서 너무 장기간 집권한다 해서 2015년까지 집필하였지. 10년이 집필할 수 있는 최대치거든. 나는 아랍어 책을 집필할 때 크게 두 가지를 신경 썼어. 하나는 아랍어 수능 교재가 이슬람화 되는 것을 경계하고자 했지. 이건 아랍어 교과서지 이슬람 교육 책이 아니니까. 예를 들어, 나는 “앗쌀라무 알레이쿰”도 “알라가 주시는 평화가 당신들 위에 있기를” 이라는 이슬람적 의미를 가지고 있으니 뒤에서 가르치자고 주장했었어. 다른 교수님들이 아랍인들이 많이 쓰는 표현이니 앞에 배치해야한다고 해서 다수결에 따라 앞에 두기는 했지만 말이야. 그렇다고 해서 이슬람을 빼놓자는 이야기는 아니야. 아랍어에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 이슬람이니 넣어도 뒤에 넣자고 생각했지.
 두 번째로는 이 아랍어 교재가 수능을 넘어 아랍어를 이해하고 아랍 세계가 블루오션이라는 것을 깨닫는 교재로 만들고자 노력했어. 수능을 위해 문제 풀고 복습하고를 넘어 “아랍이 이렇구나.”를 느낄 수 있게, 문화가 가미된 아랍어 학습법을 하고자했지. 마치 아랍 세계를 이해하는 입문서처럼 말이야. 그런 만큼 학문적인 접근보다는 생활적인 접근을 강조했지. 예를 들어 아랍어 교육이 표준어 중심이기는 하지만 기본 어휘표에 부크라, 말레이쉬 등 아랍어 방언도 일부를 넣었어. 다행히도 아랍에 관심 있는 승무원, 여행 가이드 분들이 이 교재와 강의를 통해 공부하신 것 같아 한편으로는 기쁘지만 한정된 강의 시간에 쫓기고, 책을 집필하는데 쫓겨서 이를 잘 못 지킨 것 같기도 해 아쉽다. 

Q. 아랍어 교육을 실시한지 10년이 지나가는데요, 아쉬운 점이 많으실 것 같아요.
   A. 나는 무엇보다도 아랍어에 다른 외국어의 잣대를 적용시키지 않았으면 좋겠어. 수능을 출제할 때도 다른 외국어는 어려운데 왜 아랍어는 쉽게 출제하냐면서 다른 언어권에서 압박이 들어온 적이 있었거든. 아랍어는 접근이 힘든 만큼 똑같은 기준으로 하면 안 된다고 생각해. 아랍어는 접하기도 힘들고 배우기도 힘들잖아. 강제성 보다는 아랍어가 어렵다는 것을 인정하고 아랍어에 대한 고려가 필요하다고 봐. 예를 들어 똑같이 일본어 20강, 아랍어 20강으로 한정하기 보다는 아랍어 글자 익히는 시간이 오래 걸리는 것을 고려해 아랍어 강의 시간을 더 늘릴 수 있게 해주는 거지. 그렇지 않으면 아랍어는 영원히 힘든 언어가 될 것이고, 아랍어의 강의는 정말 ‘달릴’ 수밖에 없어질 거야. 

Q. 이제 곧 16학번이 들어옵니다.  새로 들어오는 친구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A. 아랍어는 다들 알다시피 어려운 언어야. 미국에서 미국의 공무원들을 대상으로 출장시 가장 어려운 언어를 조사했는데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 그리고 아랍어가 뽑혔어. 뭐 한국어, 중국어, 일본어는 한자 때문에 어렵다고 뽑힌 것이겠지. 이처럼 아랍어는 어려운 언어야.
   그렇기에 오히려 아랍어는 블루오션이라고 할 수 있지. 현재 아랍어 교수님들은 아랍어가 블루오션이라는 것을 알고 자제 분들에게 아랍어를 교육시키고 계시지. 처음에는 아랍어 경쟁률이 높을지 몰라. 하지만 갈수록 반으로 줄고 학부에서의 4년, 대학원에서 2년을 더 공부한다면 거의 혼자 우주에서 날라 다닐꺼야. 우리나라에 걸프지역 환자들이 많이 들어온다는 것은 알 거야. 보호자 두 명과 함께 국가에서 지원해주는 돈으로 의료관광을 오는데, 현재 인력이 많이 부족해. 이제 들어오는 16학번들은 의대, 공대에서 공부하는 수준으로 아랍어를 공부했으면 좋겠어. 그러면 정말 아랍어의 블루오션에서, 우주에서 나는 기분을 경험할 수 있을 거야. 

후기 

아랍어가 수능과목으로 채택됨으로 아랍어과 학생들이 활동할 수 있는 범위가 넓어졌고 아랍어의 중요성을 사회에 알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렇게 수능아랍어가 자리 잡는 데에는 아랍어과의 교수님들의 보이지 않는 많은 공헌이 있었다. 이인섭 교수님을 만나뵈러 약속 장소에 계셨을 때도, 교수님께서는 다른 교수님들과 함께 아랍어 교재에 대해 논의하고 계셨다. 오늘도 아랍어과를 위해 노력해주시는 교수님들께 이 기사를 빌어 감사드리고 싶다. 그리고 아랍어과의 50년이 앞으로의 100년으로 계속되기를 바라며 이 인터뷰를 마친다. 


1997년 아랍어과 학과장님 
손주영 교수님 당시 인터뷰

아크바르 97년 4월호

글쓴이  강지헌(97학번), 김소정(97학번)
옮긴이  박상욱(11학번)

아크바르에서는 현재(덧붙임 : 97년 4월 당시) 아랍어과 학과장님으로 재직중이신 손주영 교수님과의 인터뷰를 들어봤다. 

Q. 교수님, 이번 교육개정안에 따르면 아랍어가 중·고교의 제2외국어로 신설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교수님께서는 어떻게 생각하시는지요?
   A. 아랍어과에 있어서 정말 기쁘고 환영할 일입니다. 그동안 학과 여러 교수님들께서 다방면으로 노력하신 결과라 생각됩니다. 사실, 아랍어의 제2외국어 신설은 늦은 감이 있습니다. 유독 우리나라에서는 UN 공용어인 아랍어의 중요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번 기회에 아랍어의 사회 인식도 달라졌으면 좋겠습니다.

Q. 아랍어과 학과장님으로 계시는 동안에 특별한 계획은 없으신지요?
   A. 우리 아랍어과가 세계화에 발을 맞추어 나아갈 수 있도록 어학연수, 지역연수 등의 프로그램을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요르단 대학과 이라크의 알무스탄스리야 대학에 교육부 지원하의 한국어과를 만들 계획이고, 이에 따른 아랍의 우라와 교류관계에 있는 대학과의 긴밀한 접촉과, 또한 교수님들과 학생들간의 교류가 활발해졌으면 합니다.

Q. 학과장님으로 계시는 동안에 아랍어과 학회에 많은 지원을 해 주시겠다고 들었습니다
   A. 훌륭한 대학 생활을 위해서는 학술모임, 발표회를 많이 가져야 한다고 생각하고, 또한 학회가 잘 되어야 그 과도 잘 운영되는 법입니다. 지금 과에는 학술 활동을 하는 모임이 있는데 앞으로 더 조직적이고 적극적인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해 돕겠습니다.

Q. 아랍어과 학생들에게 대학 생활에 대하여 한 말씀 해 주시지요
   A. 대학 생활은 인생의 가장 중요한 과정 중의 하나라고 생각하는데 부디 철학하고 그에 따라 행동하는 대학생이 되었으면 합니다. 특히 1학년들은 처음부터 아랍어를 가까이 하는 습관을 가졌으면 하는 바램입니다.

Q. 끝으로 솔직히 97학번들은 아랍어를 상당히 어려워하고 있는데 좀 더 효율적으로 아랍어를 공부할 수 있는 방안이 있다면 말씀해 주세요
   A. 방안이라... 모든 언어는 다 같다고 생각합니다. 언어는 이해보다 벽돌 쌓는 기분으로 무조건 외워야 빠르지 않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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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년 역사와 학과지의 추억


학과지에 담긴 아랍어과의 추억

아랍어과 옛 학과지를 읽으며

글쓴이  박상욱(11학번)


아랍어과 역사전시회를 기획하며 우리 학과장실은 많은 동문선배님들을 통해 여러 학과유물을 수집했다. 교과서, 시험답안지, 출석부, 사진, 타자기 등 여러가지 재밌는 유물을 발굴할 수 있었지만 ‘타므르 회원’으로서 눈에 띄는 건 바로 옛 학과지였다.

2015년 현재 학교를 다니는 우리에겐 80년대, 90년대의 옛날 이야기를 구전으로 듣기엔 쉬운일이 아니다. 그러다보니 그냥 막연히 ‘학과지는 2010년 타므르에서 처음 시작되었나보군..’ 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번 기회로 앗타므르지의 선배격인 움마, 아크바르 등의 학과지가 이미 존재했고 오히려 지금보다 더 수준높고 생각도 깊고 문장이 아름다운 기사를 쓰며 역시 그때도 지금처럼 사람들이 재밌게 생활했음을 알게되었다. 옛사람일수록 책을 많이 읽어서인지 학번이 높을 수록 글이 정말 심도있다는 점이 상당히 인상깊었다.

1992년에 나온 움마 1호지의 제일 첫번째 기사가 바로 87년 대선에서 민주세력의 집권실패를 비판적 시각으로 다룬 것이다. 움마 1,2,3,4호 맨앞면을 장식하는 기사들은 다음과 같다. <87년 오류를 딛고 승리의 92년으로>, <미국과 이라크 관계>, <언론의 외래문화 종속성>, <시민운동론 비판>, <우리 언론의 현실>, <WTO 그이후>, <한국 대학생의 complex>, <광고, 자본주의, 대학인>...

6월항쟁으로부터 시간거리가 멀지않기 때문인것 같지만 타므르에 정치문제가 다뤄진 적이없는 사실을 보면 솔직히 신기할 따름이다.

이렇듯 움마, 아크바르 등 우리 선배들이 쓴 기사를 읽으며 당시의 생각과 모습을 읽을 수 있게 되었다. 이렇게 옛 선배들의 글을 읽으며 저떄는 그랬군, 저때도 그랬군 하며 마치 내가 80, 90년대 학과생활을 한 것 같았고 쏠쏠한 재미를 느꼈다. 그러면서 이런 기사들을 우리 조교들만 읽기엔 아깝다는 생각에 이렇게 학과지 후배인
‘앗타므르’에서 선배들의 옛 기사를 복구하고 재편집해 올리기로 했다.

우선, 지난 50년 아랍어과 역사에서 긍적적인 발전의 기회를 가져온 것은 무엇일까? 여러가지가 있겠지만 제7차 교육과정 개정안에서 아랍어가 제2외국어 과목에 들어간 것을 꼽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와 관련된 기사는 아크바르 97년 4월호에 집중적으로 실렸다. 해당 잡지를 읽으면 이소식에 아랍어과 일원들이 대단히 기뻐하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해당 잡지에는 아랍어가 제2외국어 과목으로 신설되는데 큰 역할을 하셨다고 전하는 오명근 교수님과 당시 학과장님이신 손주영 교수님의 인터뷰가 실려있으며 특집 기사가 실려있다. 이 3기사를 복구하고 19년이 지난 2015년 현재 오명근 교수님과 EBS에서 아랍어 강의를 하고 계신 이인섭 교수님 인터뷰를 새로 기획해 올린다.

또한 우리 아랍어과의 최대 소모임인 천지간이 부활하는 기사를 복구했다. 15학번 이후 후배들이 천지간의 역사를 돌이켜 볼 수 있는 기회가 될것이다. 천지간이 1997년에 생긴 것은 since 1997이 새겨진 야잠을 보아도 알만한 사실이지만 천지간 이전에도 ‘아랍어과 풍물패’가 있었다는 사실과 천지간이 단순히 ‘하늘과 땅 사이’라는 뜻이라기보다 당시에는 ‘하늘, 땅, 인간’을 염두해두고 작명한 사실은 나는 이번 복구기사를 통해 처음 알게되었다. 이만큼 긴 역사속에서 선배들의 사고를 전달하는데 기록문화인 학과지의 책임이 큼을 다시 느낀다.
그리고 19년전 천지간 선배를 인터뷰 해 쓴 학과지 기사가 우연한 기회에 복구되어 후배들에게 전달되는 것처럼 지금 쓰는 타므르 기사도 시간이 흘러 우리의 후배들에게 전달될만큼 아랍어과 가족들이 서로 소모임 소속은 다를지라도 타므르지를 많이 사랑해주고 인터뷰나 투고기사도 많이 보내주며 참여하면 좋겠다. 이번 12호 타므르지의 특징 중 하나가 소모임 소속을 가리지 않고 투고기사나 인터뷰를 많이 받은 것도 이번 복구기사를 만들며서 얻은 영감에 있다.

마지막으로는 학과와는 상관없는 사람사는 이야기를 넣었다.
편지글에 감동했다는 이유보단 군대가는 우리 오모 조교가
생각나 일부러 군대에 관한 편지를 넣었다.

여하튼 사람사는 이야기는 늘 재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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