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4월 26일 화요일

1997년 편지





안녕하세요, 군인아저씨?

움마 1992년 1호지

옮긴이  박상욱(11학번)

안녕하세요?

이제까지의 내가 떠올릴 수 있는 군인 아저씨란, 얼굴이나 이름은 몰라도 아주 씩씩한 모습이었는데 함께 지내던 사람에게 이런 호칭을 붙이려니 좀 어색한데요. 물론 잘 지내겠지요, 신동씨?

그리고 보니 오빠 입대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지났는 데 좀 편지가 늦은 감이 있어 미안하네요. 오빠의 이해를 구하는 게 힘들진 않을 거라 믿어요..

이미 다른 사람들의 편지를 통해서 많은 이야기들을 접했으리라 생각해요. 학내문제, 과내의 작은 이야기들도. 달리 내 이야기외엔 새로울 것이 없을 것 같네요. 그렇다고 내 이야기가 새로운 것도 아니지만... 학생회라는 곳에 관여하고 있는 탓에 조금은 바쁘게 살아요. 학교안의 일들이 곧 나의 일일 수 있고 그래서 그런 것들을 지켜보아야 하고, 회의도 해야 하고, 자보도 써야 하고, 신선한 후배들도 챙겨 주어야 하고, 열심히 놀아야 하고, 그러다 틈나면 공부도 해야하고 말이에요.

드디어 나의 생활에 ‘후배’란 것이 등장했다는 것. 내가 그 입장이기만 했을 땐 아무런 부담도 느끼지 않을 수 있어 마냥 좋기만 했는데 좀 부끄럽단 생각이 들어요. 선배라는 위치를 통해 지금의 후배들이 아닌 지난날의 내 모습을 비추어 보는 까닭이 아닐까 싶어요. 나와 오빠의 공통적인 현재가 없다는 안타까운 사실이 자꾸 지난 시간들을 되돌아보게 하네요. 작년 오리엔테이션 첫날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부르던 오빠의 모습도 기억할 수 있고 엉성한 세미나지만 그래도 열중하고 재미있었던 우리도 있었고 장난치고 때로는 맞기도 했지만 그러나 굽힘없이 장난치던 나의 모습도 떠올리기 어렵지 않고, 입대 전날 손잡고 흐르는 눈물도 모르는척 웃으며 “잘가요” 그러다 부둥켜안고 그냥 울어버렸던 기억도, 꽤나 좋은 시간들을 많이 만들어 놓은 것 같아 흐뭇하네요.

이렇듯 웃으며 지난날들을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곧 다시 만날 수 있는 짧은 헤어짐이 있기 때문이라 생각해요. 물론 좋은 선배로 기억에 남게 해줄 시간들일테지요?

서로 속한 사회가 달라 더 이상의 공통적 화제를 찾을 수 없음을 이유로 이만할까 하는데 괜찮겠지요? 언제나 오빠를 기억하는 후배란 것으로 짧은 편지를 마칠께요.

건강하세요. 오빤 잘 하실 거예요.

1992.4.2. 부연이 씀



TO. 부연

참 오랜만에 불러보는 너의 이름이구나.

가까이 있을 땐 무척이나 쉽게도 불렀던 많은 이름들이 멀리 떨어진 이곳에서 가끔씩 큰 소리로 외쳐 부르고 싶은 건 그만큼 날 둘러싸고 있던 그들의 자리가 커서였을 것이다. 그래서인지 홀로 제각기 떨어져 있는 외로운 군인의 유일한 기쁨이 어쩌면 그리운 이의 편지를 받는 것, 바깥세상의 소식을 듣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만큼 보고, 듣고, 배우는 것들이 온통 짙푸른 초록 빛깔로만 물든 것들이라 작안 일에도 쉽게 기뻐하고 우울해 하며 그래서 군인을 단순하다고 말하는 지도 모르지.

그동안 어떻게 지냈고 지금은 어떠한 모습으로 무엇을 그리며 살고 있는지...

옛 기억들을 헤집고 제멋대로 상상해 보며 그렇게 지금껏 허기진 그리움을 어렵사리 채워가며 지냈던 이 곳 훈련소 생활도 이제 조금씩 마무리에 접어 들고 있다. 채 기억되지도 못하고 지나가버린 빠른 시간의 흐름들. 가끔씩은 그만큼의 시간을 전과는 전혀 다른 낯선 곳에서 아무 의미도 찾지 못한 채 그렇게 보내버린 것은 아닐까 하는 걱정을 한다. 스스로에게 점점 무관심해져 가고 이따금 아무 생각도 나질 않는다. 오직 떠오르는 건 가끔씩 열병처럼 온몸을 휩싸고 돌던 그리움과 비틀거리며 자신과 싸우고 있는 나의 모슴뿐. 요즘은 모든 것이 정리되지 못한 혼란함을 느낀다.

오늘 오후엔 오랜만에 하늘이 파랗게 웃고 있다. 나에게까지 내려질 봄의 축복이 남아 있었는지 오랜만에 웃어보았다.

부연이 편지 받고 놀라고 기쁘고... 그저 기쁠 뿐!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 솔직한 마음이었겠지.

요즘은 힘든 훈련도 거의 끝나고 편해서 그런지 시간이 더디감을 느낀다. 그만큼 조금쯤 여유를 갖고 이것저것 생각도 해볼만 한데 그동안 무디어진 머리탓인지 아니면 원래 머리가 둔한 탓인지 모든 것이 생각만큼 쉽진 않다. 열심히 살아가는 모습처럼 아름다운 것은 없다고, 그렇게 살 수 있으면 하는 바렘으로 하루하루를 채워가지만 여전히 부족함을 느낀다.

왜 이렇게 나 자신에 대한 푸념을 너에게 자꾸 털어놓는가. 술잔을 앞에 놓고 긴 밤을 지새우며 얘기하고 싶은 것들이 자꾸만 쌓여 이젠 목을 차고 오르고... 언젠간 그 시간이 올 것임을 알기에 부연이 마음 편하게 재미없는 얘기 그만하기로 하자.

떨어져 있는 시간은 길었는데 만날 수 있는 시간은 아직도 멀고...

밤이 깊어간다. 시간이 없다는 핑계로 이틀밤에 걸쳐 쓴 편지라 읽기가 힘들구나. 글씨도 엉망이고.

훈련소 퇴소식은 5월 4일이지만 이곳 논산에서 2주, 다시 평택에서 3주 간의 훈련을 더 받을 것 같다. 부연이 웃는 모습 볼 수 있는 시간이 아마도 그 이후가 되겠지.

잘 지내길 잠들기 전 언제나 기원하기로 하며 오늘 밤도 좋은 꿈 꾸자.

안녕.

1992.4.18. 황산벌 Blue New Kid
About Unknown

Editor in Chief, At-Tamr, Dept. Arabic, Hankuk University of Foreign Studies, Seoul, Korea E-mail : attam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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